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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반짝이는 위로를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

그대에게 반짝이는 위로를
<안녕, 나의 소녀 시절이여>

사춘기 시절 우리의 모습은 어땠을까.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만큼 부끄러웠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때만큼 눈부신 날들은 없었다는 것을.

글 최미연 / 사진 네이버영화, 편집실

다양한 삶이 녹아들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사춘기가 조금 일찍 찾아온다. 그래서 조금 어린 초등학생들도 어느날부터인가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항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기도 하고, 한껏 철이 든 어른처럼 행동하기도 하며, 이성에 눈을 떠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하는 날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철이 들었다’고 표현하는데, 어쩌면 그것이 철이 든 게 아니라 어린이의 순수함을 조금씩 버리거나 혹은 감추고, 어른이 되어가는 사회화 과정 중에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춘기가 마음 속을 꽉 채우고 있던 우리의 열여섯 살은 어떤 형태를 하고,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었을까. 여기,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자락에 위치한 라다크 마을의 산골소녀 쏘남왕모는 조금 색다르고, 깊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왕모는 두 동생을 둔 맏언니로 부모님의 집안일을 돕는 것은 물론 동생들을 돌보고, 같이 책을 보며 따뜻한 마음을 지닌 평범한 소녀였다. 왕모가 있는 라다크 마을은 황량하지만 히말라야 산맥이 감싸고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티벳 불교로 경전 하나씩은 갖고 있을 정도이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경전을 읽으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경들이 우리에게는 그저 ‘시시하고 심심한’ 곳이겠지만 왕모에게는 더없이 좋은 풍경이며 야생의 동물들과도 금새 친구가 될 수 있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 속에서 별세상처럼 묘사되던 라다크. 인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친절하고 정직한 편이라는 이곳은 꿈많고 웃음많은 열여섯 왕모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땅이다.

가족을 지키는 소녀

왕모의 가족에게는 양이 재산의 전부이기도 하다. 이제는 다양한 문화가 유입돼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은 자급자족을 하는 그들의 삶에서 양은 더없이 좋은 먹거리이자 겨울을 나게 해주는 든든한 재료이기도 하다. 양을 키우며 살고 있는 왕모의 집은 척박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왕모에게는 한 살 어린 여동생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동생은 일찍 출가해 스님이 되어있고, 11살 여동생은 라다크의 한 호텔에서 월급도 없이 일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10살 여동생은 학교에서 기숙하고 있다. 6살, 5살인 남동생 둘과 함께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어린 나이에 식모살이를 하느라 학교를 못 가 뒤늦게 배우느라 동갑내기 친구들은 고등학생이지만 아직 중학생인 왕모. 게다가 어릴 때 도시에서 가정부 일을 하면서 집 주인은 1년에 학교에 고작 15일만 보내며 왕모의 열여섯살을 빼앗아갔다.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동생들을 돌보며 학교를 다니는 왕모는 친구들과 노는게 재미있는 평범한 10대 소녀일뿐이다.
그러나 평범한 왕모에게도 삶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는 집안의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고, 왕모의 집안 형편도 나아지지 않았다. 왕모에게 남은 선택은 없었다. 친구와 동생처럼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길뿐이었다.

예전에는 왕모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집의 딸들은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를 일찍 시집 보내 집안의 입을 덜고 남자 집안으로부터 결혼의 조건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얻어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다. 남자들은 스님이 되고, 여자들은 일찍 시집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던 데에 비해 어쩌면 출가를 한 왕모의 삶은 조금 더 나을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출가를 결심한 왕모가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모습에서 엄마는 멀리서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출가를 앞둔 어느 날 밤, 왕모의 동생은 왕모를 꽉 끌어안고 누운 채 가지말라고 애원한다. 별보다 많은 반짝이는 자신의 꿈을 접고, 가족을 위해 스님이 되기로 한 왕모. 왕모의 열여섯은 그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삶의 답을 구하다

동생과 가족과의 눈물 겨운 작별 뒤 왕모는 스님들을 따라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며 ‘패드 야트라’ 순례길에 오른다. 패드 야트라는 ‘발의 수행’이라는 의미로, 이 순례길을 가기 위해서는 인내와 인내, 그리고 또 인내가 필요하다. 17일간 200km의 순례길에 나선 왕모의 눈빛은 맑기만 했다. 해발고도 5000m가 넘는 고산을 넘고 넘어 걷고 또 걷기도 하고, 삼보일배라는 힘든 고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어린 나이에 고행길에 나선 왕모이지만, 나이가 무색할만큼 걸음걸음마다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왕모는 순례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떠나온 집과 가족들 그리고 가슴 속에 반짝이는 별처럼 많은 꿈과 친구들과 보냈던 시간들은 왕모의 걸음에 묻어나며 히말라야 산맥과 넓은 평야와 함께 펼쳐졌다.

높게 솟아오른 고산들을 넘고, 깎아지른 절벽을 지나며 외줄에 매달려 강을 건너는 순례길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고행을 통해 도를 깨우치기 위한 불교의 수행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순례길은 그들에게도 험난한 길이다. 그럼에도 승려가 되기로 한 왕모는 집에 있는 것보다 교육도 더 잘 받을 수 있고, 잘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너무나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왕모는 그 일상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왕모는 순례길을 걸으며 “어디로 가는지 잘 몰라요”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왕모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해답을 가장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한 선택으로 시작한 순례길의 고행이었지만, 결국은 그 고행길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하고, 앞날의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왕모는 가장 먼저 알았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걷는 이 길을 걷고, 또 걷다보면 길 끝에 다다르면 내가 지나온 높은 산맥이 있고, 넓은 강이 있고, 시린 눈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처럼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해답은 인내와 인내, 그리고 또 인내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밝게 보인다는 것을 왕모의 삶을 통해 알 수 있다.

바느질이나 설거지 등 집안일만 하는 여성의 일생이 아니라, 그저 로맨틱한 사랑과 결혼을 꿈꾸는 여성이 아니라 삶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하고, 스스로 극복하며 새로운 삶과 새로운 인생의 황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여성의 일생과 사랑의 또 다른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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