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섬유’는 대구의 자부심이었다. 일제강점기 섬유공장의 대대적 유입으로 인해 대구의 섬유산업은 각광 받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 5개년 계획’의 절정이었던 1970년대 섬유산업은 지역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처럼 발전을 거듭해온 섬유산업은 1990년 한 해에만 약150 억 달러 치를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전체 우리나라 수출량(650억달러)의 25%를 차지 할 만큼의 놀라운 수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때까지였다. 최근 섬유산업의 수출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30년 전보다 되레 역행한 수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세계수준의 패션 부흥은 먼 나라 얘기로만 치부되기 일쑤.
섬유산업의 쇠락 원인은 다각도로 제기되고 있다. 우선 급작스런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기업 환경의)어쩔 수 없는 퇴보가 꼽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구 및 개발 인력은 하락 국면을 맞이하게 됐고 인력과 자금 부족으로 인해 자연스레 설비 등의 각종 투자에도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섬유는 점차 ‘사양(斜陽)’이라는 낙인을 공식화 해갔다. 이를 방증하듯 청년층은 섬유산업을 도외시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각종 지원은 이래저래 기대하기 힘든 구조로 쇠락했다는 방증이다.
4차 산업혁명의 범람으로 산업과 IT의 초연결 산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점임을 놓쳐선 안 된다. 시의를 거스른 진부한 발전계획은 자칫 모색으로만 그칠 공산이 크다. 시작이라고 믿어보자. 예전의 영광은 기대하되, 그 옛날의 구태(舊態)는 청산해야 함이 마땅하다.
패션과 IT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융합의 관계이다. ‘IT강국’의 캐치 프레이즈와 섬유산업의 메카로 명성을 쌓아올린 대구의 노하우는 아무이 봐도 좋은 궁합이다. ‘초연결’, ‘초고도화’의 적기라는 것이다.
지역 유수의 대학에서 매년 개최하는 패션쇼는 오늘날 섬유산업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수십 년간 척박한 지역의 섬유환경서 고집스레 벨벳회사를 일궈온 어느 노(老)사장의 열정은 ‘아직은’이라는 희망을 담뿍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단순 명맥 이어가기에 그쳐선 안 된다. 청년들의 열정, 그리고 발군의 실력과 경험을 지닌 지역 섬유업계와 인공지능의 만남을 이번 웹진을 통해 주선해 볼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활용사례 등
명동과 더불어 대한민국 패션 일번지로 일컬어지는 동대문이 ‘패션 클러스터’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국내의 고도화 된 IT기술력을 패션과 융합한다는 것인데 일감을 공동수주하고 생산하는 이른바 ‘원스톱 네트환경’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
원리는 이렇다. 개별 니즈에 따른 주문 완료 시, 원단 수급서부터 디자인에 이르는 생산 전 과정을 하루에 완성해 낸다는 이른바 ‘IT 패션 모멘텀’, 여기에는 염색, 원사, 유통까지 아우를 수 있는 국내 기술력이 투영돼 있다. 이 같은 환경이 자리 잡을 수 있다면 20%에 가까운 비용절감 효과와 수출경쟁력 확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유수의 IT업체와 패션업계의 융합도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5G 패션 스마트 팩토리’의 이름으로 기존 천편일률적 (작업)환경 개선을 통한 생산성 제고에 방점을 찍는다. 여기에는 AI와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혁신과 편의성을 제공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5G 지능형 로봇 개발과 네트워크 환경 확보, IT관련 인프라 구축 및 빅 데이터를 활용한 개별적 트렌드 분석, 스마트 팩토리를 근간으로 한 패션업계 전반으로의 AI기술 접목이 필수 사항으로 꼽힌다.
패션 뿐 아니라 뷰티, 인테리어 분야에서도 AI의 기술력은 빛을 발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폰 사진을 통해 각자의 발 사이즈를 측정한 후 최적화된 신발을 추천해주는 모바일 서비스 등이 출시돼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밖에도 가상현실(VR,AR)을 기반으로 머리모양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헤어 스타일링 체험 서비스와 AR 기반의 쥬얼리 체험, 취향에 맞는 패션 선택을 용이하게 하는 의류 디자인 프로그램 등이 상용화를 위한 담금질에 매진하고 있다.
AI와 사람의 콜라보도 적지 않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국의 한 패션업체에서는 알고리즘과 패션 담당자와의 융합을 통해 소비자에게 맞춤형 옷과 악세서리 등을 추천한 뒤 원 스톱으로 배송하는 시스템이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 300여만 명의 고객 유치에 성공한 이 업체는 2018년 1조 5000억원에 이르는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등 패션과 IT 연계산업의 성공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패션과 인공지능의 연결고리를 찾는 여정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유수의 한 패션 기업은 몇해전 AI로 디자인 된 의류를 선보여 대중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국내 첫 사례이다. 여기에는 단순 디자인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빅 데이터를 통해 패션 유행을 분석해 고객의 니즈가 가장 많이 투영된 최적의 디자인을 추적`제공한다.
패션과 IT의 만남은 스마트의 이름을 딴 ‘스마트 웨어’로의 등장을 예고했다. 일상생활과 환경을 염두한 ‘적절한 패션 창출’,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 바로 그 것이다. 특히 코로나 19와 미세먼지의 범람으로 외출에 소극적인 소비자들로 하여금 의류에 스마트 모듈을 장착, 장착된 모듈과 스마트폰의 연계(앱)를 통해 현재의 미세먼지 농도와 그에 따른 갖가지 대처상식 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레저에 최적화된 의류도 IT의 시류를 피해 갈 수 없다. 자동 발열 기능을 의류에 부착, 레저 환경에 따라 자유로이 온도를 제어할 수 있어 (운동 중) 공간의 제약을 최소화한다. 물세탁도 가능하다.
패션과 크라우드 펀딩의 만남도 꽤나 흥미롭다. 고객과 브랜드는 개별이 아닌 ‘상생’의 모토를 둔 이른바 ‘윈윈 전략’을 전면에 내세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펀딩의 성패에 따라 수용예측이 가능해져 예기치 못한 재고 생성 등의 갖가지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소비자는 한차례 걸러진 양질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비자에게 브랜드 디자인을 미리 공개한 후 정해진 기간에 목표 금액이 채워 질 시 생산과 유통에 따른 유용 자금을 확보해가는 방식이다. 금액 충전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이뤄진 만큼 실패확률은 그만큼 낮아지는 셈이다.
남성정장과 AI의 만남은 이질적이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정장에 삽입된 NFC태그가 스마트폰과 연동해 정장에 스마트폰을 태그하기만 하면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품이 등장했다.
정장을 입은 회사원들은 더 이상 명함을 찾아 안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질 수고스러움이 사라졌다. 스마트폰을 태그만 하면 문자를 통해 원하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명함을 전송할 수 있는 기술,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런웨이 곳곳을 누비는 모델에게 눈길을 뺏기기 전 한번 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모델의 의상이 디자이너의 손길로 탄생한 옷인지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의상인지 말이다.
패션산업과 IT의 접목을 단순 열풍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기본 아이템 개발을 넘어 생산, 유통, 홍보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IT의 접목이라 함은 시의를 내포한 주요 사업수단으로 대두되고 있는 오늘이자 내일이라는 것이다.
결말
사실 다른 분야에 비해 패션산업은 AI의 영향력이 협소하다. 그만큼 (패션산업은)사람의 손을 거쳐야할 ‘노동집약적’ 산업 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된 섬유산업에 AI를 접목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다름 아닌 ‘최선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함이다.
오롯이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아야 할 제품 이면에, 디자이너의 경험이 축적된 과정을 빅 데이터를 통해 수집하는 과정을 떠올려보라. 번뜩이는 영감과 경험 등을 AI가 일정 부분 수집함에 따라 효율성 제고에 나선다는 것이다.
별 다른 이유가 아니다. 기능적 측면이나 실시간 이뤄져야 할 유행분석은 AI가 더욱 신속하고 섬세하다. 물론 인간 고유의 영역은 어찌할 수 없다 손 치더라도 인공지능과 패션은 충분히 ‘상호보완적’ 관계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AI를 통해 ‘유통의 간소화’를 꾀해야 한다. 클러스터라는 전제로 양질의 인력이 분포돼 있는 섬유업계의 성장 가능성을 이끌어내야 함이 마땅하다. 초 연결, 초 융합의 네트워크 구축이 가미된다면 부가가치 창출이란 동기는 빛을 발할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19의 시대, 방역이 국가 차원의 어젠더로 부각되는 시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코로나(왕관)의 무게를 견뎌낼 패션과 IT의 만남을 더욱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