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

그러나 먼저 떠난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이 이 시대의 진짜 청춘과 다름 없을 것이다. 청년 실업이 110만 명에 달하고 체감 실업률이 23%까지 치솟은 지금, 청년들이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값이다. 극히 좁아진 취업의 문에서 선두를 향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몇 퍼센트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자신이 서류전형을 통과할 만한 스펙을 가졌는지, 면접에 합격할 만한 준비가 되어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기록한다. 그들의 기준은 오직 세상의 잣대로 이루어져있다. 이탈하는 순간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에 잠시 멈추거나, 다른 길로 벗어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선택이다.
자신을 '잉여'라 칭하던 이들은 척박한 취업 시장을 떠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을 위해 대외 활동을 쌓는 순환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유럽으로 향했다. 비록 시작은 꼬질꼬질한 히치하이킹에 틈만 나면 쓰레기장이나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는 신세지만 한 번도 "괜히 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성공했다. 쓰레기장에서 주운 마커를 활용하며 감격스러운 첫 영상을 찍은 후 물꼬는 터졌고 순식간에 유명세가 번져 근처 숙박 업계를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끝내는 로마, 터키, 영국을 오가며 그들의 마지막 계획인 영국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순식간에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대신 마음속에 아무런 추억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손창섭 작가의 <잉여인간>에 의하면 잉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뜻한다. 중요한 부분을 다 추려내고 남는 나머지의 것. 누구도 필요로 하지않는 사람들.
그러나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을 것 같던 잉여로운 그들의 일대기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하나의 길을 개척했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은 없다는 새로운 명제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