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2년, 평소 등산을 즐기던 한 남자가 한국인의 발 모양에 수입 등산화가 불편하다고 생각해 토종 등산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수개월에 걸쳐 한 달 평균 3켤레의 수입 등산화를 해부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수정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국산 등산화 1호 ‘로바’다. 국내 첫 아웃도어 브랜드 ‘K2’를 탄생시킨 고 정동남 케이투코리아(주) 선대 회장의 이야기다.
‘아웃도어’ 아이덴티티 고수
‘K2’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77년 산악인 고 고상돈 씨가 K2 등산화를 신고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면서부터다. 이후 1990년대 국내 등산화 시장의 50%를 점유한 케이투코리아(주)는 더욱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해 국내 최초 고어텍스 등산화, 다이얼 등산화 등을 선보였다. 한국 산악지형에 특화시켜 개발한 아웃솔(X-GRIP, 엑스그립)은 지금까지도 등산화 제작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케이투코리아(주)는 1995년 등산화 이외 등산장비, 등산복 등 의류사업 분야로도 진출하며 ‘등산화 브랜드’에서 ‘아웃도어 브랜드’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선대 회장의 별세로 2003년 지휘봉을 잡은 아들 정영훈 회장은 더욱 공격적인 투자로 아웃도어의 패션화를 이끄는 데 앞장섰고,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2000년대 중후반에 더 큰 성장의 배에 올라탔다.
“K2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가장 험난해 도전을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산악인들 사이에서 최고봉은 K2로 통하죠. 우리나라에서 척박했던 아웃도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어 국내 등산화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으니 브랜드명을 잘 따라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회사가 지속 성장해온 가장 큰 요인은 다름 아닌 방향성이 아닐까 합니다.”
정원일 구매팀 부장의 말처럼 케이투코리아(주)가 시종일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방향성은 바로 ‘아웃도어’다. 국내외 대부분의 아웃도어 브랜드가 그렇듯 케이투코리아(주) 역시 등산의류 이외 캐주얼의류 등 다양한 상품군을 제작·유통하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를 확장하는 가운데도 캠핑, 여행, 하이킹, 골프, 스포츠 등 아웃도어의 영역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초창기 브랜드 탄생의 본질, 즉 ‘K2’의 아이덴티티라고 믿기 때문이다.
친환경제품으로 또 다시 도약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트렌드를 선보이는 것은 패션회사의 숙명이다. 아웃도어를 다루는 케이투코리아(주) 역시 섬유·패션업계의 대세에 발맞춰 친환경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지난봄 ‘에코 프로젝트(ECO PROJECT)’ 런칭과 함께 ‘시그니처 디바인2 자켓 W’를 K2에서 출시했다. 에코 프로젝트는 지속 가능한 패션의 가치를 담아내고자 기획된 상품군으로, 그동안 다양하게 선보였던 친환경 제품들을 하나로 묶고 원사 기업들과 협업해 환경친화적 생산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대부분의 국내 브랜드가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품의 일부 스타일에만 적용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차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죠. 그러다 보니 마케팅 측면에서 소비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셀링 포인트에 한계가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재활용’, ‘리사이클’ 하면 대부분 PET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 원사 원단을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리사이클에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많습니다.”
자사 연구개발 센터인 케이투코리아연구소는 PET병뿐 아니라 폐섬유, 폐의류 등을 재활용한 친환경섬유를 개발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내년 봄·여름(SS) 시즌에 폐그물·폐어망에서 추출한 나일론으로 만든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북유럽에서 캠핑용품으로 유명한 ‘노르디스크’를 들여와 조만간 프리미엄 감성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로 자리매김시킬 계획이다. 제품 중 일부가 아닌 대부분이 친환경 소재라는 점이 차별점이자 강점이다.
케이투코리아(주)는 국내 등산화 부문 대표기업으로 입지를 굳힌 뒤 아웃도어(K2·아이더), 골프(와이드앵글·피레티), 스포츠(다이나핏) 등 다양한 브랜드 라인으로 업계를 선도해왔다. 그리고 이제 ‘친환경’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2025년까지 전 제품의 50%를 친환경 소재로 대체하는 미션을 실행 중이다. 사실 친환경시장은 가격이나 소비층의 구매력 측면에서 과거 아웃도어시장만큼의 폭발적 성장을 예고하진 않는다. 다만 ‘가치소비’를 실천하는 젊은층의 구매파워가 커질 미래 시점까지를 내다보는 것이다. 거시적 안목으로 국내 최초를 기록해온 케이투코리아(주)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영상 인터뷰 정원일 구매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