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사람

시니어 인턴의 품격 - 영화 <인턴> 리뷰

디지털시대에 시니어로 산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온갖 디지털기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MZ세대 앞에서 그들이 들려줄 수 있는 업무적 노하우는 빈약하기만 하고, 수십 년 경력으로 얻은 업무적 지식은 한순간의 인터넷 검색으로 무력해진다. 시니어 위기의 시대, 진정 그들이 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

영화 <인턴(The Intern)>은 아날로그시대를 살아온 이들 시니어의 설 자리가 어디인지를 말해준다. 그들의 자리는 아침 7시 15분 스타벅스의 구석진 테이블도, 떨어져 사는 자식 손주의 비좁은 방도, 하릴없이 출근도장을 찍는 마트도 아니다. 어쩌면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MZ세대가 있는, 바로 그곳일지 모른다.

주인공 벤(로버트 드니로)은 40년 동안 일하던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정년퇴직하고 난 뒤에도 일할 열정이 넘쳐 인터넷 의류판매업체의 시니어인턴으로 입사한다. 물론 자기소개 동영상을 업로드하기 위해 9살 손자에게 SOS를 쳐야 했지만 말이다.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승낙한 사실조차 잊을 만큼 정신없이 바쁜 30대 CEO 줄스(앤 해서웨이)는 그가 불편하다. 차를 탈 때 상석에 앉는 것도 눈치 보이고, 출근을 준비하는 동안 주방에서 대기하는 부하직원이 어르신이라는 자체가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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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시니어 주인공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젊은이들이 열정을 다하는 일과 사랑, 고민과 좌충우돌의 일상. 그 모든 것들은 온갖 풍파를 지나은 70대 노인에게 더 이상 당황스러운 일도 불쾌한 일도 아니다. 다만 휴대용 술병을 홀짝이는 운전기사의 안일함이 위험천만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 CEO 모친의 집을 침입하는 일쯤은 최악의 경우 해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것이 그가 아는 삶의 노하우요 혜안이다.

어떤 순간에 놓여도 시종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는 벤은 젊은 동료들로부터 무한 신뢰를 얻게 되고, 젊은 CEO 역시 그가 가진 세월의 힘을 인정하게 된다. 디지털기기가 그렇듯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하고 처리하는 일을 반복하던 줄스는 그 모든 것들이 의미 없게 느껴지는 절망의 순간 그의 앞에 무장해제되어 절규한다. 그녀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슬퍼하는 이 하나 없이 혼자서 쓸쓸하게 묘지에 묻히는 일! 그런 그녀에게 벤은 말한다.

“저와 몰리(죽은 아내) 옆에 묻혀요. 대표님을 위한 자리가 있어요.”

영화는 일반적인 관념과는 거리가 먼 정반대의 직장의 모습을 그린다. 30대 CEO와 70대 시니어 인턴, 시작부터 괴리감이 느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베스트 프렌드로 끝을 맺는다. 벤은 속도는 느리지만 가르쳐주는 대로 디지털기기를 곧잘 다룬다. 아무것도 배울 것 없어 보였던 그에게서 젊은 동료들은 일에 지친 머리와 가슴을 쉬어가는 미덕을 배운다.

이 시대의 시니어들은 고령화와 디지털전환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들이 쌓아온 인생의 결과물들은 정말로 MZ세대에게 실용성 없는 유물이기만 한 것일까. 그에게 이런 인자한 얼굴이 있었나 싶을 만큼 인자한 얼굴로 화면을 채우는 우리의 벤, 로버트 드 니로. 그는 당당하게 MZ세대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게 전부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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