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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한 숲길
울산 어울길에 가다

걷기 신드롬이 불고 있다. 어여쁜 길들이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가운데 걸음의 미학을 제대로 알려주는 장소가 있다. 신선한 흙 내음과 빽빽한 건물 숲이 함께 어울려 있는 곳, 색다른 매력의 울산 어울길을 만나보자

글 송두리 / 사진 한국관광공사

#1
전체와 부분, 그 사이

울산의 골목은 푸르르다. 아니, 푸르러졌다. 산과 들이 쿰쿰하게 목말라갔던 과거 공업 도시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는 울산시의 노력 덕분이다. 꽤 오랜 세월을 거쳐 가꾼 덕에 울산의 곳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고 공장 및 산업단지와 자연이 맞닿아있는 독특한 장관을 그리고 있다.
여울길은 이러한 울산의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는 울산 둘레길 중 하나이다. 울산의 마을과 마을, 시작과 끝을 연결하며 말 그대로 울산을 하나로 어우른다고 하여 어울길이라고 부른다. 초여름이면 아카시아 향이 짙어지는 동구 월봉사부터 독야청청 푸르른 빛깔의 남구 솔마루길까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울산 어울길은 총 75km로 7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있고 이 길을 다 걸으려면 30시간이 넘게 걸린다. 1개 구간이 5~15km로 3~6시간이 소요되어 전체를 다 돌아보려면 5일은 날을 잡고 여유롭게 봐야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여행다운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 울산의 명소만 콕콕 집었기에 어떻게 보면 울산의 부분집합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전체집합이기도 하다.

어울길 코스 안내

#2
산과 바다, 그 사이

울산의 바다를 보고 싶다면 3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어울길은 해안가에 조성되어 있지 않지만, 이 구간에서 전망대에 올라 동해를 관람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3구간 시작점에 서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까지는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듯이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던 산길이 가팔라지고 산책이 아니라 제법 산행으로 여겨질 만한 길이 나타난다. 울산의 진산(鎭山∙지역을 지키는 산)으로 통하는 무룡산이 3구간의 포문을 여는데 그 시작은 두 가지 코스로 나누어진다. 무룡고개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기존의 2구간과 이어지며 가장 일반적으로 택하는 코스다. 한편 화봉동 화봉 교회 옆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시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하루 전에 머무르고 아침에 출발하기 좋다. 기령재까지 총 14.5km로 약 6시간이 소요되기에 정상에 오르기 전 마음을 조금은 단단히 다잡아야 한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따금 산책로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들이미는 알록달록한 건물과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녹색의 나무들, 그들이 내뿜는 은은한 풀잎의 향, 걸을 때마다 서로 부딪혀 사각거리는 모래 알갱이들은 잠들었던 감각을 깨우고 시간을 무디게 만든다. 그렇게 나를 옥죄어오던 어떤 것들과 단절된 채 자연으로 돌아가 온전한 나를 느끼며 쉬엄쉬엄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산행 끝에 도착한 정상에는 탁 트인 바다가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푸르디푸른 동해와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짭짤한 공기의 맛까지. 어울길 3구간에서는 모든 감각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산과 들 그리고 바다가 있다.

#3
쉼표와 마침표, 그 사이

언제 또 이렇게 걸으며 사색할 여유가 있을까. 혹시나 긴 여행에 지쳐 여유라는 것을 잃어버렸다면 울길 7구간에서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남산 솔마루길을 거쳐 남산루, 솔마루 하늘길과 울산 대공원을 지나 선암 호수공원에 도착하는 코스이다. 총 14km의 긴 구간이지만 중간중간 잘 조성되어 있는 쉼터와 한적한 길은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특히 호젓한 솔길은 동화에 나올 법한 신비감을 주고 마치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남산루에 도착하면 넓은 태화강 사이를 두고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광경을 볼 수 있다. 곳곳에 놓인 전망대는 울산의 도시와 태화강을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게 조성되어있다. 네모난 집과 건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어깨에 얹어 놓았던 세상의 근심을 조금은 남겨놓고 올 수 있게 된다. 선암호수공원의 적요한 물결 또한 상념을 지워주고 잔잔한 위로를 건네준다. 당신이 울산의 어울길을 택한 이유가 ‘쉼’에 있다면 이곳 남산루에서 그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뜨거운 여름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언제 추웠냐는 듯 강렬한 태양이 일발 장전 중이다. 올해도 무척이나 바빴던 탓에 여름 휴가 계획을 세우기 전이라면 울산 어울길은 어떨까. 삶에 치여 미뤄놨던 소중한 것에 대하여 다시금 새겨볼 수 있는 곳. 여행이 끝나면 당신의 진짜 삶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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