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사람

우리의 모든 꿈이 저장된다면?
- 영화 <메모리즈> 리뷰

간밤의 꿈을 잊지 않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메모지를 찾아 적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간밤의 꿈을 기억해내려 애써도 떠오르지 않았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무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꿈까지 우리가 꾸는 모든 꿈을 낱낱이 기록해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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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가 직업인 주인공 현오(배우 김무열)는 자신이 꾼 꿈을 비상하게 기억해내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그 꿈을 일러스트를 그리듯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지녔다. 그에게 꿈은 오늘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현실적이다. 그런 현오가 연구원 K와 M에게 지난밤 꿈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꿈에서 현오는 생전 처음 보지만,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여자 주은(배우 안소희)을 만난다.

주은은 연기자를 꿈꾸는 신인 연극배우다. 꿈에 대한 열정이 크지만 그만큼 두려움도 크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도 밖에서도 주눅이 들어 자신의 앞날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러다 한 카페에서 평소 선망하던 유명 남자배우를 만난다. 사실 그곳은 영화 촬영장이었다. 주은은 자신이 유명배우의 상대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뻐할 새도 없이 또 다시 잔뜩 긴장하고 만다. 그러자 유명배우는 화가 나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영화는 다시 현실로 넘어온다. 그동안 꾸어왔던 꿈과는 장소도, 사람도 낯설었던 꿈에 의아해하는 현오에게 연구원 M은 사진을 건넨다. 간밤에 꿈에서 본 소극장, 대기실, 카페가 담겨있는 사진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는 현오에게 연구원 K는 말한다.

“김현오 님이 궁금해하시는 모든 사항은 여기 있는 DSR17 칩에 있습니다. 이 메모리 칩에는 현오 씨가 꿈속에서 만났던 사람의 꿈이 저장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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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모리즈>(김종관 감독)는 2019년에 만들어진 러닝타임 36분의 단편영화다. 쉽사리 영화화할 수 없을 것 같은 ‘메모리 반도체’를 소재로 삼은 유일무이한 영화다. 제작사는 바로 메모리 반도체 수출 세계 1위 기업 삼성전자다. 당시 특별상영회에 온 관객들은 이 기발하고 새로운 영화에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정리하자면 현오는 꿈을 테스트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었고, 지난밤 꾼 꿈은 피실험자 중 한 명이었던 주은의 꿈이었다. 연구원들은 주은의 꿈을 메모리칩에 저장해 현오의 꿈에 주입한 것이다. 영화 속 연구원들은 사람의 기억을 시청각적 정보로 만드는 연구에 몰두하던 중 사람이 꿈을 꾸는 동안 머릿속에서 이미지화되는 순간을 코드로 남기는 방법을 알게 됐다. 그리고 형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암호의 데이터를 사람의 뇌에 주입해 꿈의 기억을 불러오는 실험을 진행하는 중이다. 실험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자신의 꿈을 비상하게 기억하는 현오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멀게만 느껴졌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이 어느새 우리 일상에 성큼 다가와 있다. 4차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그 모든 기술 안에 반도체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부품이다. 지금껏 경험한 기술의 발전 속도라면 영화에서처럼 사람의 꿈을 이미지화하고 메모리에 저장하는 일까지도 가능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상처받은 이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풀어내거나, 기억상실증후군을 치유하거나, 어쩌면 개나 고양이의 꿈을 공유해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불의한 세력에 의해 우리의 의식을 지배당해 암울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가 꾸는 모든 꿈을 낱낱이 기록해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서 볼 수 있을 만큼 반도체 기술이 발달하는 어느 날, 우리는 과연 그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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