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방향

반도체 전문인력 ‘통합관리체계’ 필요

반도체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주요국은 반도체를 경제 안보의 핵심 품목으로 인식하고 파격적인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반도체 패권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강국’이라 불려온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4차 산업의 발전과 함께 수요가 급증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즉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성적이 부진한 상황이다. 따라서 산업전환이 한창인 이 시기에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우지 못한다면 미래 먹거리시장에서 낙오되기 십상이다.

현재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독주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대만, 중국 등 주요국은 세제·보조금 강화, 제조기반(인프라) 구축, 기술역량 제고 등 물적·인적 투자를 대규모로 펼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 확충을 위해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시설에 520억 달러(약 62조 원)를 지원하는 ‘미국경쟁법’을 통과시켰고, 기술 우위를 점하면서 공급망 교란을 막기 위해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또 미국 내 반도체 제조설비와 장비 투자에 최대 25% 세액을 공제하는 내용의 ‘반도체촉진법안’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도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한 종합반도체 강국이 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반도체산업 초격차 확보 방안에 ▲공장 신증설을 위한 규제 해소 ▲인프라와 투자·R&D에 대한 실효적 인센티브 강화 ▲첨단기술 보호 및 미국 등과 전략적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계 강화 ▲시스템 반도체 육성 위한 파운드리 투자 지원 확대 및 팹리스 기업 성장 촉진 ▲ 반도체산업 이끌 인재 양성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어 올해 8월부터 국가핵심전략기술의 수출 제한, 기술유출 방지, 특화단지 지원, 연구개발·조세 지원 등을 규정한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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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반도체 기술 주권 사수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바로 ‘인재’다. 주요국은 우수 인재의 해외 이탈을 막고 경쟁국의 핵심 인재 유치를 위한 투자·세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첨단 반도체 설계·연구·제조·패키징 분야 인력양성 프로그램 개발·투자를 장려하고, 핵심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다양화하거나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이민정책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핵심기술 국산화를 위해 매년 수천여 명 이상 인력양성을 목표로 반도체산업·교육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파운드리 생산에 강한 대만도 반도체 관련학과의 정원을 확충하고 해외인재 관리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의 고도성장으로 인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IDM(종합반도체업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의 특화 기술력 향상이 중요하지만 적절한 인재 확보가 어려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 현장 기반의 반도체 실무인력이 부족하고, 특히 시스템 반도체는 다양한 분야로 빠르게 발달하고 있어 늘어나는 수요 대비 전문 설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9년 연속 반도체 2위, 메모리 1위’의 위상에도 위기론이 대두되는 이유가 이처럼 ‘기업-인력-기술-소부장(소재·부품·장비)’으로 묶인 반도체산업 생태계가 취약한 데 기인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선도기술 확보 경쟁에서 미국 마이크론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미 뒤처져 있는 시스템 반도체는 전주기(팹리스설계·파운드리제조·후공정조립)에서 선도국과 격차가 여전하고, 인공지능(AI)·전력반도체 등 차세대 분야의 기술 경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소부장은 고기술 핵심품목의 대외의존도가 높고, 미래시장 선도를 위한 기술개발도 미흡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대학원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까지 줄어 반도체 전문인력 공급이 업계 수요에 크게 못 미친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 정부는 산업계의 수요 대비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 공급을 위해 양적·질적 인력양성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석·박사급 전문인재(고급), 학사급 융복합인재(중급), 전문학사 이하 실무인재(초급) 등 수준별·학력별 지원을 통해 인재 양성을 위한 저변 확보에 나서고 있다. 또 민관이 합동으로 협업체계를 구축해 중소기업 균형성장과 상생지원 체계를 조성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2031년까지 반도체 전문인력을 15만 명 이상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우리의 정책을 글로벌 경쟁국들과 비교했을 때 아쉬운 점은 반도체 인력의 통합 관리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학력별 반도체 배출인력은 물론 반도체 전공 해외 유학생·이민자 현황 파악도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의 비전을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으로 전문인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정부 주도의 인재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수 인력의 이탈을 막는 체계를 마련하는 동시에 해외 엔지니어 유치를 위한 세재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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