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은 우리나라 핵심산업으로 수출 1위를 독주하며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다. 반도체는 TV, 컴퓨터, 스마트폰, 자동차 등 대부분 전자기기에 들어갈 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기술, 드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부품으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최근 반도체산업의 글로벌 현황과 우리의 위치를 살펴본다.
반도체란 무엇인가?
‘반도체’는 평상시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지만 열을 가하거나 특정 물질을 넣으면 전기가 통하는 물체를 말한다. 반도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Transfer(전송하다)+Varistor(저항소자)]는 1948년 미국 벨 연구소가 발명했는데, 전기전도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저항의 역할도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트랜지스터 발명 이전 컴퓨터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니악은 1만 8,000개가 넘는 진공관을 통해 작동됐다. 그러나 트랜지스터가 개발되면서 비로소 전자부품 소형화 시대가 열렸고, 컴퓨터는 물론 노트북, 스마트폰 등의 크기가 획기적으로 작아졌다.
그동안 반도체는 18개월마다 반도체칩 용량이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나올 만큼 빠르게 발전해 왔다. 그러다 10년여 전부터 반도체 물질로 사용되는 실리콘 소자를 더 잘게 쪼갤 수 없는 한계에 부닥쳤다. 그러던 2012년 IBM 연구팀은 실리콘 웨이퍼(wafer, 아주 얇은 조각) 위에 트랜지스터 역할을 하는 1나노미터짜리 탄소나노튜브 1만 개 이상을 6나노미터 간격으로 세워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탄소나노튜브를 100배 이상 촘촘히 배열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반도체도 분화를 거듭했다.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반도체로서 비메모리 반도체 대비 대규모 설비투자를 필요로 하며, 대표 제품으로 D램(DRAM, 전원을 끄면 정보도 사라지는 메모리)과 낸드플래시(NAT+AND Flash, 전원을 꺼도 정보가 저장되는 메모리)가 있다.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는 정보의 처리기능을 하는 반도체로서 메모리 반도체 대비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며, 대표 제품으로 CPU, GPU 등이 있다. 대부분의 메모리 반도체는 종합반도체 기업이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 과정을 진행하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비즈니스 방식에 따라 설계만 하는 ‘팹리스’와 설계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로 나뉜다.
메모리는 한국, 비메모리는 미국 ‘강세’
‘메모리 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 내외를 차지하며 글로벌 시장이 2~3년 주기로 공급 부족과 공급 초과 사이클로 호황·불황을 반복한다. 메모리는 대형 장치산업으로 단기간 내 공급 조절이 제한적이며, 특히 D램 수요는 글로벌 대기업이 대량 구매하는 구조로 주요 기업의 구매 축소 시 단기간에도 큰 폭의 가격 변동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1992년 D램 1위, 2002년 메모리 1위 등극 후 압도적인 1위 국가로 부상했으며, 대부분 일괄공정을 수행하는 IDM(종합반도체업체)이 독과점 체계를 영위하고 있다. D램의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미국)의 3사 과점 시장이 조성돼 있으며, 낸드플래시는 우리나라가 시장의 47%를 점유하고 있는 가운데 ‘1강(삼성) 5중(키옥시아, 웨스턴디지탈, 마이크론, SK하이닉스, 인텔)’ 체제로 D램보다 경쟁적 구조가 형성돼 있다.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는 바로 AI, IoT, 자율주행차, 5G 등 미래 신산업의 핵심부품에 해당하는 분야로, 반도체 시장의 50~60% 차지하고 있다. ‘주문형 생산’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이 비교적 안정적이며,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5.3%의 지속적인 시장 확대를 전망하고 있다. 최고 수준의 설계기술을 보유한 미국은 시장의 70% 이상(인텔 22%, 퀄컴 8.8%, nVidia 6.2%, 브로드컴 5.8%, AMD 4.9%)을 점유하고 있다. 대만은 파운드리(위탁생산)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는 TSMC와 UMC, 팹리스(설계)를 점유한 10대 기업 중 3개사(MediaTec, Novatec, Realtek)를 보유하며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이 시장의 3%, 이외 기업들이 1% 미만의 점유율로 세계경쟁력은 아직 미약한 상황이다. 한편 차량용반도체에 있어서는 인피니언(독일), NXP(네덜란드), ST마이크로(스위스) 등 EU의 상위 3사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소부장 및 패키징·테스트산업도 성장세
반도체 완성품(칩)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중간재(소재·부품·장비)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가 대표적인 장치산업인 만큼 세계 반도체장비 시장은 약 800~1,000억 달러로 예상된다. 특히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제조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한 지난해 전년 대비 42% 성장했다. 전체 매출의 80%를 글로벌 톱 10기업(일본 4, 미국 3, 유럽 2, 한국1)이 점유하고 있고, 글로벌 톱 20기업 중 우리 기업은 2개(6위 세메스, 13위 원익IPS)에 불과하다. 증착·세정·후공정 분야에서 일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공정이 미세화되면서 전공정뿐 아니라 후공정 소재의 수요가지 늘어 소재시장이 장기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반도체 소재시장은 후지필름 등 일본 업체들이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은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중심으로 증착소재, 식각가스 등 신소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반도체 전공정의 초미세화와 집적화가 한계에 도달하면서 첨단 패키지 공정 등 후공정 기술개발의 중요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패키징시장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시스템 반도체의 지속적인 성장성과 적용제품의 확대로 2019년 460억 달러에서 2025년 650억 달러로 지속적인 성장이 전망된다. 테스트(OSAT)시장의 경우도 2017년 57억 달러에서 2022년 77억 달러로 지속적인 성장이 전망되는 가운데 시장 비중이 1(메모리) 대 5(시스템) 구도로 형성되고 있다. 패키징·테스트산업은 파운드리 산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어 파운드리 강국인 대만의 ASE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IDM·팹리스·파운드리 기업들은 패키징·후공정 기업의 주요 고객사로 웨이퍼 제품을 받아 패키징 공정 및 테스트만을 수행한다. 패키지 기술이 복잡해지고 파운드리·IDM이 내재화되면서 테스트기업이 전문화하고 있으며, 패키징 타입이 과거와 비교해 복잡하고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패키징 전문업체의 생산 비중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SFA반도체, 하나마이크론, 네패스 등의 기업과 미국 Amkor 한국법인, 싱가포르 STA TschipPAC 한국법인이 매출 규모 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테스트시장의 경우 패키징 시장의 10분의 1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ASE, 네패스, 두산테스나, AT세미콘 등이 진출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