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음식전쟁 중
한 나라의 식문화(食文化)는 안으로는 동질성(同質性)을, 밖으로는 정체성(正體性)을 나타낸다. 식문화 속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함축돼 있다. 가히 그 나라 문화의 정수(精髓)라 할 만하다. 때문에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은 바로 그 나라를 상징하기도 한다.
무역과 관광 등으로 국가 간의 왕래가 활발해지면서 식문화는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중요한 자원으로 변모했다. 먹거리가 또 다른 먹거리를 낳은 것이다. 음식이 자원화 되면서 비슷한 식문화를 가진 나라들 사이에는 서로 자기네가 원형(原型)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음식전쟁 중이다.
나라마다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 등재 각축전
유네스코(UNESCO)는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식문화와 관련된 인류 무형 문화유산을 선정해 등재했다. 프랑스 미식(味食)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와 그리스·모로코·스페인·이탈리아 4개국의 ‘지중해식 식단’, ‘멕시코의 전통요리’ 북크로아티아의 ‘생강빵 제조기술’ 등 4종이 한꺼번에 등재됐다. 프랑스의 미식은 프랑스 정부가 아닌 요리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등재 신청을 했다. 요리사들은 “음식은 문화다!”라고 하면서 자국 음식을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몇 년 동안 노력했었다.
2013년에는 한국의 ‘김장’과 일본의 전통요리인 ‘와쇼쿠(和食)’가 동시에 등재됐다. 이후 이태리 나폴리피자와 벨기에의 맥주 등이 뒤를 이어 현재 식문화와 관련해 등재된 무형 문화유산은 9종이다. 최근 들어 각 나라들마다 자국의 식문화를 등재하고자 갖은 애를 쓰고 있다. 프랑스는 하루 1억 개 이상 팔리는 바게트를, 이태리는 자기네가 처음으로 기계를 만들고 제조법을 개발했다고 에스프레소를, 태국은 새우에 향신료와 소스를 넣고 끓인 자국의 대표 음식인 똠얌꿍을 적극 밀고 있다. 한국도 장(醬)문화와 한식(韓食)을 등재하고자 노력 중이다. 각국의 정부는 물론이고, 그 분야 요리사나 유명인 등 민간에서도 적극 로비를 벌이면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와쇼쿠를 등재하고자 일본의 정부나 민간에서 치열하게 로비를 펼쳤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부자재 수출, 관광 등 산업 파급 효과 커
이렇듯 나라마다 각국의 식문화를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오리지널리티를 적극 알리고, 자원화하기 위함이다. 이태리가 에스프레소를 등재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에스프레소 맛을 세계인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에스프레소를 축출하는 기계나 커피 잔, 커피 등 에스프레소와 관련된 모든 분야의 주도권을 쥐고자 함이다. 또 프랑스 요리는 파리로, 피자와 파스타는 이태리로, 김치와 한식은 한국으로 와서 배운다. 원형의 힘이다. 일본과 중국이 기무치와 파오차이로 도발해오는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이유다.
관광대국인 이태리와 프랑스, 태국, 일본 등에 관광객이 넘치는 것은 조상들이 빚은 성이나 사원 등 유형의 건축물이나 그들이 만든 예술품만을 보러 가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 혹은 그 지방이 잉태한 고귀한 맛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해마다 6월 프랑스 보르도 와인 축제에는 전 세계에서 수십 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에든버러 등 세계의 이름난 축제에 빠지지 않는 것이 먹거리다. 혀는 눈과 귀보다 더 강렬하다. 맛있는 음식은 또 먹고 싶어진다.